그때 그날의 기억들

14편

작성자 : Errestr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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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올라의 전투이후로 SC/DHSJ 연합군은 여러차례 교전을 회피했다. 사기가 극한까지 오른 연합군을 상대로는 교전하기가 어려울것으로 판단한듯했다. 

 

지루한 블루볼링이 계속된지 한달, 우리는 쉐도우 카르텔이 남부 로섹으로 파병을 온다는 불운한 소식을 듣게 되었다. SC는 슈퍼캐피탈 40여대와 타이탄 십여대, 그리고 

 

캐피탈 병력을 헤이마타로 파병했고, 우리는 이 충격적인 소식에 다소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무릎 꿇을수는 없는법. 나는 끊임없이 연합군의 수뇌부들을 독려했고 수뇌부들 또한 끝까지 싸우겠다고 맹세했다. 나는 전력의 열세와는 별개로 전쟁은 흐름이고, 우리가 첫 교전에서 좋은 결과만 낸다면 우리가 전쟁의 주도권을 가져올수 있을것이라 판단했다. 

 

이것은 적군 또한 마찬가지였고, 우리는 호시탐탐 서로를 노리며 탐색전을 시작했다. 그리고 3월 6일 밤, 우리는 SC/DHSJ측이 LO의 포스를 공격하는것을 포착했고, 이를 제압하기위해 플릿을 폼업했다.

 

적군은 미노카와의 지원을 받는 래틀스네이크 플릿이었다. 우리는 적군이 드레드넛을 가져올것이라고 판단, 캐리어/팍스의 지원을 받는 마차리얼 플릿으로 폼업했다.  그리고 적군은 우리가 걸어온 싸움을 피하지 않았다. 

 

 

교전이 시작되자 적군의 드레드넛 파일럿들이 일제히 적군의 스테이징에 로그인을 시작했다. 하지만 불운하게도, 우리의 캐리어들은 적군의 드레드넛과 상당히 가까웠고, 

 

캐리어들에게 막강한 데미지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의 모든 캐피탈들이 적군의 드레드넛 바로 옆에 위치한것은 아니었다. 나는 2차, 3차, 팍스그룹을 적군의 드레드넛으로부터 50km이상 위치한곳에 배치했고 캐리어들에게는 적군의 드레드넛으로부터 멀어지라고 지시했다.

 

적군은 계속해서 에스컬레이션을 시도했다. 하지만 전혀 상관없었다. 적군이 드레드넛을 20대이상 드랍하더라도, 우리가 일정수 이하로만 줄인다면 남은 적군의 드레드넛은 팍스의 자체 탱킹을 뚫지도 못하고, 심지어 우리의 캐리어들이 적군의 드레드넛과 근접한 위치에 있더라도 캐리어의 탱킹 역시 뚫지 못하고 무용지물이 될것이므로.

 

 

상대적으로 탱킹이 약한 나글파, 모로스부터 침착하게 제거해나가며 드레드수를 줄여나갔고, 우리의 탱킹을 뚫지 못하자, 적군은 도주하기 시작했다. 

 

값진 승리였지만, 극도로 분노한 쉐도우 카르텔이 총전력으로 반격해올것이라는것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을정도로 자명했다.

 

우리는 계속해서 DHSJ의 문마이닝 포스들을 공격해나갔고, 그중에서도 특히, 값비싼 문마이닝 포스들이 집중된 Gulmorogod, Bosboger 성계에 공격을 집중했다. 그리고 한국시간으로 토요일 아침, 미국시간대로 금요일밤이라는 양측에게 좋은 타이머를 얻게되었다.

 

빼앗으려는 자와 지키려는자

침략군과 방어군

 

자, 이제 무대는 갖추어졌다. 2차 블릭랜드 전쟁의 승패를 가룰 전투가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