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날의 기억들

2편

작성자 : Errestrian

조회수 : 976

진군의 뿔피리 소리가 네나마일라 평원에 울려퍼진다. 스너프박스와 그들의 하수인들이 로컬로 진입을 하기 시작하고 이윽고 그리드에 보이는 놈들의 함대는...아콘 플릿이었다. 이른바 판테온 셋업. 서브캐피탈과 캐피탈의 싸움. 하지만 우리는 200명이 넘는 숫적 우위를 보유하고 있었다. FC는 맞서 싸우기로 결심한듯, 랜딩한 스너프박스의 플릿으로 플릿 워프를 걸었고 그와 동시에 교전이 시작되었다. 

 

 

첫 프라이머리는 적군의 발곤이었고 200명의 집중 포화가 쏟아졌다. 하지만 우리의 노력을 비웃듯이 발곤의 탱킹은 뚫리지 않았고 그 짧은 시간내에 아군의 전함은 10대가 넘게 격추되고 있었다.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FC는 전원 퇴각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스테이션으로 플릿 워프를 걸었다. 충격과 공포였다. 이 무력감..패배감..200명이 넘는 플릿원중 스너프박스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그렇게 자유 블랙라이즈 연합군은 무릎 꿇었다. 압도적인 증오 앞에서...

 

 

그후로 몇일이 지났을까. 어느날 갈란테 밀리샤의 승전보가 들어왔다. 할라넨에서 스너프박스의 아콘 플릿을 멋지게 갈아먹었다는 소식이었다. 사실 이겼는지 졌는지도 모를만큼 뒤엉킨 전투였지만, 그래도 스너프박스의 아콘 플릿을 30대가량 부수는것에 일조했다는 사실만해도 가치는 충분했다. 왜 우리를 부르지 않았을까. 킬멜에 다수의 판데믹리전, NC. , BL까지 보이는것으로 보아 모종의 협약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입갤 플릿은 친 CFC 경향이 짙으므로 갈란테 밀리샤 나름대로 배려를 해준것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질투심이 솟는것은 어쩔수 없었다. 우리도 저렇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플릿은 스킬포인트가 높은 파일럿들로 이루어진것도 아니었고, 휘향찬란한 팩션배틀쉽으로 구성된 플릿도 아니었다. 우리 플릿에겐 놈들의 허를 찌를 전략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난 종종 여러가지 기록물들을 보곤하는데, 그중에 봤던 하나가 떠올랐다. 지금은 사라진 갈란테 연방의 영웅들. Shadows Of The Federation의 비디오였다. 

 

 

영상 자체는 단순했다. SOTF의 멤버들이 적절한 웹과 타겟페인터를 조합한 소수의 드레드넛으로 CFC의 슬렙니르 플릿을 아작내는 내용이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저 전술은 14년 연말로밍때 스너프 박스가 우리에게 사용한 전술이기도 했다. 드레드넛 블랍 전술. 이 단순하면서도 위험천만한 전술이 놈들의 탱킹을 뚫을수 있을 것이라고 난 생각했다. 

 

작전개시는 5월 23일. 하루하루 개시일이 다가오는 가운데 스너프박스가 라카파스에 위치한 독도꼽의 포스를 리인포스 시켰다는 불운한 소식이 들어왔다. 리인포스가 풀리는 시각은 22일 새벽 3시. 완벽한 스너프의 프라임 타임이었다. 포기하는것이 현명한 선택이었겠지만 나는 포기하기 싫었다. 그 포스가 많은 돈을 벌어다 주는것도 아니었지만 상징성이 있었다. 우리가 일본인들을 상대로 승리하고 쟁취한 상징성 있는 포스였던 것이다.  

 

리인포스가 풀리는 22일 당일. 나는 CFC의 지원을 약속받고 갈란테 밀리샤까지 불러서 방어플릿을 폼업하기 시작했다. 최악의 시간대에 최악의 장소였지만 자신 있었다. 우리를 도와주는 CFC의 탱구 플릿이 오기로 되어있던 것이다. 

 

나는 라카파스로 플릿을 이동 시킨후, 포스에서 차분하게 놈들을 기다렸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와플의 나가 플릿과, 스너프박스, 그리고 아군 플릿까지 합쳐서 로컬은 어느새 200을 넘고 있었다. 나는 자신이 있었다. 우리의 뒤에는 CFC의 백업 플릿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백업 플릿이 오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릴것이라는 디렉터의 주의를 무시하고, 놈들의 워프인을 피하지 않았다.

 

조합은 예상했던대로의 메가스론 네이비이슈와 트리아지 아콘 조합이었다. 놈들은 우리의 코앞으로 워프를 해왔다. 장거리 전투가 아닌, 고대에서나 볼법한 완벽한 백병전이었다. 첫번째 프라이머리로 적의 발곤을 선택했고 발곤은 헐까지 들어갔지만 불운하게도 죽지않았다. 

 

 

"두번째 배틀쉽이 격추 됬습니다."

 

"로지로 감당할 수 없을만큼 dps가 들어옵니다. 감당이 안됩니다"

 

가디언으로 지원을 온 갈란테 밀리샤들이 팀스픽으로 찌르듯이 계속 말해주었다.

 

"네번째 배틀쉽을 잃었어요."

 

"다섯번째 배틀쉽을 잃었습니다."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었다. 우리의 dps는 전혀 집중되고 있지 않았고 로지는 뚫리고 있었으며 나 또한 당황하기 시작했다.

 

"We are not tanking.(우리 탱킹이 안됩니다)"

 

"로지 뚫립니다"

 

30초 사이에 5대의 배틀쉽을 잃었고 더 잃을것이 자명해 보였고 CFC의 백업 플릿은 2점프거리 밖에 있었다. 나의 꼽 디렉터는 잠깐 함대를 물리는 것을 제안하였고 나는 간신히 정신줄을 잡고 함대를 포스위 안전한 스팟으로 워프시켰다.

 

 

10년과도 같은 1~2분이 지나자 CFC의 백업 플릿은 1점거리까지 도착하였고 다시 전투를 재개하였다.

 

하지만 똑같았다. 적의 메가스론 네이비이슈는 발리에 우리의 함선들을 조각내고 있었고 적의 발곤에 우리의 하드너는 전부 꺼지고 있었다.

 

 

"우리 탱킹 안됩니다 FC."

 

"다시 한번 말하는데 로지 뚫리고 있어요."

 

로지스틱윙에서 이젠 신경질적인 반응이 나왔다. 후퇴를 해야하는 상황이 분명했지만 그럴수 없었다. CFC의 백업 플릿이 오고 있는데...아군의 함선이 터져나가는게 똑똑하게 보였고 내 마음도 같이 갈려나가고 있었다. 이윽고 적군의 총부리가 나를 향하고 하드너가 꺼진채로 순식간에 터진 이후에야 나는 후퇴하라는 명령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내 오만함이 가져온 패배였다. 나의 잘못된 판단과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수많은 플릿원들이 터져 나갔다...

 

패배의 쓴맛이 다 해독되기도전에, 5월 23일의 해가 떠올랐고 폼업 시간은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더 고통스럽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