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날의 기억들

3편

작성자 : Errestrian

조회수 : 735

적의 허를 찌르는 전략은 언제나 좋은 결과를 부르는 법이다. 하지만 이 단순한 법칙이 이번에 적용될지는 미지수였다.

 

아직도 시큰거리는 전날의 패배를 가슴에 묻고서, 나는 비교적 담담히 플릿을 준비했다. 있는 힘껏 끌어모았지만 플릿원수는 쉰이 못되었다. 전날의 패배 때문일까, 한국시간 새벽3시에 80여명이 모였던 전날에비하면 초라한 규모였다. 어찌되었건 준비를 해야했고 내가 구상한 우리 플릿의 키포인트는 두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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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키포인트는 숙련된 파일럿 'deadlymessenger'의 민마타 T1 전자전 프리깃, Vigil이었다. 비질은 함선의 시그니처를 비대화시키는 전자전, 타겟페인터의 보너스를 받는 함선이다. 이 작지만 좋은 보너스를 가진 함선은 불행하게도 이브온라인의 유저 대부분에게 무시당하고, 스너프박스 역시 이를 무시할 것이 틀림없었다. 나는 이 좋은 보너스를 가진 함선이 숙련된 파일럿과 조합된다면 기적을 만들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두번째 키포인트는 드레드넛이었다. 일반적으로 드레드넛은 대 캐피탈전이나 스트럭쳐를 배슁하는데에 쓰이는것이 대부분이지만 드레드넛의 XL사이즈 무기는 서브캐피탈을 상대로 엄청난 잠재력을 지니고 있음을 나는 기록물과 패배의 경험으로 확인했다. 지난 1년간 우리는 쉴새없이 달려왔고 그 결과 몇척의 드레드넛 파일럿을 육성할 수 있었다. 스너프박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먼지같은 규모지만 첫걸음을 뗄 기회가 왔다.


약속의 시간인 오후 10시가 되었고 나는 사이노 점프시 캐퍼시터가 70%가량 소모되는 것을 감안하여 다른 드레드넛에비해 상대적으로 튼튼하고 공격시 캐퍼시터를 소모하는 아마르 드레드넛, 리벨레이션은 스너프박스의 전력을 유인하는 용도로 쓰고, 소모하지 않는 민마타 드레드넛, 나글파를 전장이 될 Nisuwa의 옆 Notoras로 배치해두었다.

 

그리고 마침내 출발하는 초라한 플릿. 나는 스테이션에 배치해둔 드레드넛의 워프 시간이라도 조금 줄여보고자하는 마음에 스테이션과 가까운 스트럭쳐인 7번 행성의 커스텀오피스에서 전투를 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스너프박스를 자극하기위해 스너프박스의 소속인 커스텀 오피스를 공격하기 시작했고 그들의 스테이징 시스템인 Rakapas에 스카웃을 배치했다.


몇십분이 지났을까. 다소 지루해질때즈음 스너프박스의 파일럿 수가 급증하는 것이 스카웃에게 포착되었다. 평소 시끌벅적하기 마련인 팀스픽에서는 말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그리고 포착된 스너프박스의 함종은...어제와 똑같은 메가스론 네이비 이슈였다.

 

보고를 받자 어제의 패배가 떠올랐다. 가슴이 쓰리고 머리속이 비워진다. 번쩍번쩍한 갑옷을 입은 기사들과 낫과 호미를 든 농민들의 싸움. 계란으로 바위치기가 될 것이었다. 몇달간 육성한 우리의 캐피탈 플릿이 스너프박스에의해 가루가 되고 의지가 꺾이는 미래가 보였다.


판데믹 리전도 없다. CFC도 없다. 간절하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갈란테 밀리샤도 오지 않았다. 1년간 달려왔지만...폭풍전야의 침묵속에서 우리는 혼자였다.


돌아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적당히 눈치보면서 숨어다니면 블랙라이즈에서 재밌게 놀 수 있을텐데.

 

"적군 타이탄 디렉셔널 스캔에 포착됨. 스너프박스 전원 타이탄 포스로 이동하였음"


그냥 1년전처럼 작은 프리깃만 타고 다니면 아무 걱정이 없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이렇게 일을 크게 벌렸을까.

 

"적군 필그림 스테이션에서 언독후 Nisuwa 방향으로 이동중"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도망갈 수 있을텐데.

 

"적군 필그림 Nisuwa에 들어왔음."

 

나는 간신히 마음을 다잡았다. 나를 믿고 따라와준 쉰명의 플릿원들을 버릴순 없었다. 내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고 긴장감에 마우스를 쥔 손마저 떨렸다.


"적군 필그림 디클락!"


오버뷰에 적군의 필그림이 보였다. 아직 늦지 않았다. 도망갈 수 있다. 나는 마지막으로 한번 더 망설였다.


"적군 사이노 열림! 적군 플릿 사이노 점프중!"


나는..나는...